|
일본은 여행하기에 완벽한 나라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디자인 상품들은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여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황홀한 감동을 준다. 그러면서도 전통의 고고함을 잃지 않아 우아한 기품까지 느껴진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관광객의 시선으로 본 모습이 일본의 진짜 모습일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산업디자인 상품이나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패션, 건축디자인은 그들 본연의 모습을 꽁꽁 숨긴 ‘포장된’ 디자인일 지도 모른다. 본래 일본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180도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 일본 디자인은 다르다: 일본 길거리 (p.23)
일본은 문자를 사용하는 방식이 확연하게 달랐다. 중국과 한국이 캘리그래피 자체에 힘을 싣는다면, 일본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캘리그래피의 힘을 뺀다. 가급적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얇고 가벼운 캘리그래피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가벼운 느낌의 캘리그래피는 이미지와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본 디자인에서 문자는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리그래피 덕분에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니 꽤나 숭고한 희생이 아닌가!
- 일본 디자인은 다르다: 일본 길거리 그래픽디자인 (p.56)
우리가 그래픽디자인을 통해 감동을 받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일본은 그중에서 ‘시각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따라서 맹목적으로 일본을 찬양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각중심의 일본 디자인은 시각적 장치가 화려해 눈은 즐겁지만 이념과 콘셉트가 없어 마음은 즐겁지 않다.
- 일본 디자인은 다르다: 일본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의 뿌리 (p.89)
중국은 크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중국인에게 크다는 것은 궁극 의 선(善)이자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크기만 해서는 안 된 다. 첫째로는 커야 하고, 둘째로는 화려해야 한다. 일례로 중국 춘절에 날리 는 연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연이 대부분 소박하고 차분한 색채를 띤다 면 중국의 연은 화려하고 거대하다. 형형색색의 연이 하늘에 빼곡하게 들 어찬 모습을 보면 눈이 아플 지경이다.
- 중국 디자인은 다르다: 중국 길거리 (p.96)
중국 디자인은 어딘가 어설프다. 화려하고 거대한 느낌은 들지언정 귀엽고 예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때로는 실소를 머금게 만드는 디자인도 있다. 일본 그래픽디자인이 여러 가지 요소를 사용함에도 안정적으로 느껴지던 반면 중국은 어떤 디자인이든 불안정하고 어설프게 느껴진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디테일’에 있다. 중국은 스케일에는 강하지만 디테일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 중국 디자인은 다르다: 중국 길거리 그래픽디자인 (p.128)
일본의 미니 문고본과 중국의 거대한 메뉴판 사이에서 우리의 책과 메뉴판은 지극히 평범하다. 뭐든지 작게 만들거나 크게 만드는 두 나라 사이에서 한국의 위치는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이를 두고 한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무책임한 말이다. 무엇의 ‘중간’이라는 말은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독자적으로 규정짓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의 사이즈 개념은 일본, 중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 한국 디자인은 다르다: 한국 길거리 (p.184)
이렇게 삐뚤빼뚤한 한국 디자인의 강점은 뭘까? 앞서 본 일본 디자인을 떠올려 보자. 일본 디자인은 모든 부분에서 깔끔하고 정갈하지만 왠지 모를 인공미가 느껴지지 않았던가? 딱딱 들어맞는 선과 형태를 보면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디자인한 듯하다. 그러나 한국 디자인에는 이러한 인공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글씨를 쓰다 보면 평행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공간을 잘못 계산해서 크기가 점점 작아질 수도 있고, 실수로 오타를 내면 좍좍 그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한국 디자인에는 컴퓨터의 인공미가 아닌 인간의 천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살아 있다. 이는 다른 나라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디자인만의 강점이다.
- 한국 디자인은 다르다: 한국 길거리 그래픽디자인 (p.212)
서양의 디자인과 유행만 좇느라 우리 것을 찾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 것을 찾기 위해 해외 문물을 받아들이는 ‘도입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입기의 패턴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대략 300년 정도의 시기를 갖는다. 지금은 도입기의 끝물로 이제 그것을 결합한 문화를 세계 속에 내보일 차례다.
- 한국 디자인은 다르다: 한국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의 뿌리 (p.2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