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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키비츠 미학사 2 - 중세 미학
W. 타타르키비츠
손효주
2006년 8월 30일
544쪽
25,000원
9-86353-39-3 / 89-86353-37-7(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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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1번가

 
-책소개-

|2008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타타르키비츠는 폴란드의 미학자이자 미술사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저서인 『미학사』는 오랫동안 예술, 미학, 철학 전공자들의 필독서가 되어왔다. 미학사와 관련해서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으나 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8세기까지 이르는 유럽 미학의 전개를 아주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서인 이 책은 원래 1962-67년에 폴란드어로 처음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저서로 인정받았다. 1970-74년에 나온 영어판 번역은 보기 드문 걸작이다.『타타르키비츠 미학사』는 전 3권(고대 미학·중세 미학·근대 미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타타르키비츠의 또다른 명저『미학의 기본 개념사』의 역자가 『타타르키비츠 미학사』전 3권을 완역하고 있다.

유럽 미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계속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나 정지, 후퇴나 전환점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격렬한 전환점의 하나는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에 일어났고, 또 하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다. 유럽 문화사 전체의 전환점이기도 한 이 두 전환점들로 인해 미학사는 세 시기로 나뉘게 되었다.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가 그것이다. 이것이 오랜 시간의 시련을 견뎌내고 가장 잘 정립된 연대기적 구분이다.
타타르키비츠는 고대·중세·근대라는 세 시기의 미학을 아우르면서 미와 예술에 대해 시대를 넘나드는 귀중한 글을 쓴 것뿐만 아니라, 각 시대의 원전들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써 그것을 예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각 용어의 정착과 변형과정을 살피며 역사 속에서 미학이 어떻게 성립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천해온 여러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2권 중세 미학


고대 미학보다 시간적으로 더 긴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중세 미학은 고대미학의 영향하에서 성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캄 등 당대 신학자들에 의해 기독교적으로 해석되고 발전되었다. 이는 미가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속성으로 간주되어 신학자들의 총서에서  미학적 문제들이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의 미학적 체계는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근본으로 했지만 범신론적인 미학 개념은 유일신적인 개념으로 변형되어졌다. 종교적 영향 하에서 미를 분석하기보다는 미 자체 내의 위계 확립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들의 종교적 태도에 따라 정신적미가 물질적 미보다 더 높이 여겨졌고 신의 미가 유일하게 참된 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한 진리와 미는 직접 묘사될 수 없으며 오직 상징에 의해 전달될 수밖에 없으므로, 중세 예술은 자연스럽게 상징적이 되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예술은 예증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진리를 영상으로 제시했다. 결국 중세 시대의 초월적인 미에 대한 관심집중이 구체적인 미학적 탐구를 후퇴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관점에 의해 단순히 중세를 미학의 암흑기라고 쉽게 표현하는 것은 중세 미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중세 미학의 개별성이 종교적 특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 등장했지만 널리 인정받지 못했던 어떤 특정 시기나 특정 사상의 경향 및 개인에게만 해당된 고립된 개념들과 사상들, 즉 개인적 통찰력과 관념의 다양성을 이어받았다.
중세의 미학자들에 의하면, 미를 감지하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몇몇 조건이 있다. 첫째, 미는 객관적인 속성이므로 거기에는 인지적 태도가 요구된다. 둘째, 이 태도는 반드시 관조적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대상은 바라보는 대상이지 추론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셋째, 거기에는 정서적 조건들이 있다. 보는 사람은 대상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그것을 무관심적으로 바라보며 적합한 내적 리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심리학적 고려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전개된 바 있었으나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고, 13세기에 비텔로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미적 지각의 조건과 과정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면서 다시 부활된 것이다.


중세 시대에 지속적으로 주장되었던 미개념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를 즐겁게 하고 찬탄과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아름답다. 중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이런 미개념은 주로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온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미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규정하고 아무런 종류의 즐거움이 아니라 보는 행위와 관조로부터 직접 야기되는 즐거움만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을 아름답다고 부른다고 설명하면서, 유일하게 그 개념을 정확하게 만들었다. 2) 물질적 미보다 정신적 미가 보다 높은 형식의 미다. 3) 중세 시대의 미개념은 선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4) 그럼에도 미는 한갓 이상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전문적인 미학적 논평 및 개념적 구별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에는 미와 적합성, 유용성과 즐거움간의 구별(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기원이다), 감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미의 구별(빅토르회와 오베르뉴의 기욤), 조화에 기초한 미와 장식의 미의 구별, 미의 요소들의 목록(비텔로), 미적 경험에 대한 기술(보나벤투라), 미적 즐거움과 생물학적 즐거움의 구별(아퀴나스) 등이 포함된다.


예술에 대한 중세의 주요 의견들은 서로 달랐는데, 중세 시대는 규칙에 따라 어떤 것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하는 오래된 예술의 정의를 고수했다. 이 예술개념은 고대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지식을 더 강조한 것이어서 학문은 예술로 간주되었다. 아퀴나스 혼자만 예술과 학문을 구별했다.
중세의 이론에 의하면 예술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예술은 정신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묘사하지만 그 일을 감각적 대상을 통해서 한다. 음악은 우주의 법칙을 반영하지만 귀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시는 진지하고 명료하지만, 형식의 우아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세련된 언어의 옷을 입어야 한다. 예술의 주제는 신학자들이 결정할 일이나 예술의 형식은 예술가에게 속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결합된 형태는 다양했다. 정신적 단계는 신비적인 비잔틴 성상애호자들에게는 필수적이었지만 성상파괴운동을 하는 이성론자들에게는 배척받았다.
중세 시대에 다소 보편적으로 주장되었던 예술에 관한 이런 “입장들”과는 별개로, 이따금 다른 통찰력과 개념들도 있었다.  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와 에리게나, 빅토르회, 보나벤투라와 아퀴나스에게서  좀더 요점에 가깝고 더 근대적인 관점이 발견된다. 그들은 예술가 및 감상자의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고 예술의 출생 및 다양한 가능성에 관심을 두었다. 거기에는 예술이 실재로부터 미의 흔적(vestigia pulchri)을 끌어낸다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묘사된 실재 대상의 미 덕분에 존재하는 예술작품의 미와 묘사된 방법 덕분에 존재하는 미를 구별한 보나벤투라의 구분 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중세 미학은 미와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보다는 개별적 사상에 강조를 둔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 중요성을 새로이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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